하얀 고무신
김정혜
신장을 정리하다가 무심결에 보게 된 신이였다. 살짝 김을 불었더니 깔렸던 먼지가 떨어지고 눈에 뜨이는것은 말끔하고 산뜻한 고무신 한컬레, 한때는 할머니가 이것을 못 찾아서 꾀나 속을 썩었었다.
조선족으로 태여나시고 그만큼 조선족다운 인생을 다 걸으신 할머니, 어떻게 보면 고무신의 소박함과 순수함이 할머니와 딱 어울리는것 같았다.
어릴적 , 나는 할머니곁에서 자라났다. 할머니는 낮에는 거리에서 김치를 팔고, 저녁이면 돌아와 김치를 담그는 생활을 재미로 삼으셨다. 그이는 항상 나에게 <<너는 조선족 새끼다. 조선족이면 조선말을 알아야지>>하며 조선말을 가르쳤다.
그래서 나는 밖에 나가 아무리 한족말을 하더라도 집에 돌아오면 꼭 할머니랑 조선말만 했다. 가끔씩 아빠가 나랑 한족말을 하는 것을 들을때면 할머니는 혀를 찼다.
<<애앞에서 한족말만 대따하는거 참 보기좋다….>>
이처럼 할머니는 조선말을 아끼고 사랑한 분이셨다. 그래서인지라 조선말이 정답고 친절하다는 느낌은 어릴적부터 가슴 깊이 박혀져있었다.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어디가 더럽거나 어지럽다는 느낌은 기억속에서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조선족은 흰옷을 즐겨 입기에 예로부터 《백의민족》으로 불리워왔다고 한다. 할머니는 흰옷을 입는 습관을 지켜왔다. 그래서 그이는 항상 남에게 깨끗하고 단정한 인상을 준 분이셨다.
기억에 남는것이 더 있다면 바로 하얀 고무신, 할머니가 그토록 아끼던 물건이다. 할머니는 거의 평생 고무신밖에 신지 않으신것 같다. 고무신이 약간 더러워지면 할머니는 마음에 안 차 닦고 싰군 했다. 내가 왜 고무신만 고집하나고 물어봤을 때 할머니의 대답은 이러하셨다.
<<세상에서 난 고문신이 제일 편하더라, 아무리 세상이 바뀌여가더라도 절대 잊지 못할 일들이 있거든, 그게 바로 항상 우리가 누구인지를 명심해야 하는것이야.>>
그때는 몽롱했던 말을 지금 돌이켜보니 이젠 알듯하다. 우리가 누구인가의 사색. 나의 사색이자 모 든 조선족의 사색이다. 사실 조선족처럼 정이 많은 민족도 없다. 심성이 착하고 밝고 일찍 남들이 부러워하며 존중해마지 않는 민족으로 손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할머니 말대로 세상이 바뀌여가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조선족이라는 이 사실을 잊고 조선족의 뜻깊은 도리와 조선족만의 특유한 미덕을 잃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틈에 사라져버리는 민족문화, 미처 되돌아보기도 전에 소실되버리는 민족정수, 이런것을 보며 제일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아마 할머니와 같은 년장자들일것이다. 약한 힘이라도 그것을 합쳐서 민족을 떠받드려 올려야 할것. 이게 할머니의 말못한 꿈일지도 모른다.
이젠 어디에서도 고무신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온 천지에 편하고 예쁜 신발이 넘쳐나는 마당에 고무신을 새삼 그리워할 일이야 뭐 있겠는가?
하지만 굿거리 장단처럼, 비 오느날 찌걱거리며 다닐 때의 그 묘하던 느낌처럼, 할머니가 호박잎 넣고 끓여주시던 된장국을 다시 마셔보고 싶은것처럼, 할머니가 하얀 고무신에 대한 정, 역시 떨쳐버릴수 없는것이다.